우리의 인생살이도 농부가 씨뿌리고 추수하는 것과 비교할 수 있습니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인생살이지만 죽음의 시점에서 풍성한 수확을 거둘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제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수확할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저는 아무런 물질적 욕심도 없습니다. 또 유명한 화가가 되고픈 명예욕도 없습니다. 저의 혼을 다하여 죽는날까지 그림을 그릴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족합니다. 저에게 추수는 제몫이 아닙니다. 이렇게 살수 있도록 만들어 주신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리고 동생 테오의 몫입니다. 추수하는 모습을 보면서 죽음을 예감합니다.
...자기 그림을 남에게 보여준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 참으로 복된 일입니다. 만약 거기서 자신의 전부가 드러난다면 좀 겸연쩍겠지요. 제가 그림을 그리는 것은 누구에게 보여주려고 하는 것이 아님은 확실합니다. 다만 좋아서 그릴 뿐입니다. 제게 그림은 일기장 같은 것입니다. 그때 그때 보고 느낀 것을 하나하나 색으로 표현한 일기장입니다. 일기를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 쓰는 사람은 없겠지요.
문제는 화가도 인간이라 먹고 살기 위해 돈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림을 남에게 보여주어야 하고 남들이 인정해주고 사주어야 합니다. 참으로 복잡하고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인정해준다는 것은 아이러니입니다. 무슨 기준으로 어떻게 인정해주는 건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인간사회에서 인정받는다는 것은 중요한 문젭니다. 많은 사람의 인정을 받으면 유명세를 얻어 자연히 돈이 생기고 풍요로운 생활을 할 수 있겠지요.
화가가 유명해지려고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다시 말해 돈을 벌기 위해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저의 기준으로 정말 우스꽝스러운 일입니다. 물론 저도 세속적인 성공을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될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저는 솔직히 그런 것을 원해 본적이 없습니다. 그저 가난하더라도 열심히 그리는 화가가 되고 싶을 따름입니다. 속된 말로 그림을 그리면서 사서 고생을 하겠다는 말입니다. 확실한 것은 한곳에 정열을 모두 바치면 무엇이든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될 것이라는 확신입니다. 화가로서 나 빈센트는 하늘에 부끄럽지 않게 최선을 다하겠다는 것 뿐입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먼 훗날 모든 사람이 그 점을 알게 되리라는 확신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 저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절대 후회없이 그저 제가 하고 싶은 것 그리고 주님이 인도해주시는 그 길을 묵묵히 갈 것입니다.
